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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생충이 아무 하는 일 없는 존재가 아니라는 증거

‘기생충 같은 인간’은 인간사회에서 욕으로 통한다. 남의 몸속에서 영양분을 빨아먹고 사는 기생충은 박멸해야 마땅한 존재로 여긴다. 옛날에는 학교에서 해마다 대변검사를 하고는 기생충 있는 아이들에게 구충제를 먹였다. 가뜩이나 영양 상태가 안 좋은 아이들이 기생충까지 먹여 살리느라 누렇게 뜬 얼굴을 하고 있는 걸 안쓰럽게 여긴 국가지도자들의 배려였던가. ‘체력이 곧 국력’이라고 외치는 지도자들에게 기생충은 그야말로 국력을 좀먹는 기생충이었다. 

그런데 기생충은 정말 해롭기만 한 존재일까. 기생충이 사라진 것과 비만 환자가 늘어난 것은 서로 무관해 보이지 않는다. 단지 비만만 늘어난 것은 아니다. 현대에 와서 눈에 띄게 늘어난 많은 질병들이 어쩌면 기생충이 사라진 데 기인할지 모른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설사, 복통, 빈혈 등을 일으키는 크론병은 원인이 밝혀지지 않은 염증성 장질환의 일종으로 선진국에서 많이 발병하고 우리나라에서도 최근 환자가 느는 추세라고 한다. 미국 아이오와대 연구팀이 난치성 크론병 환자 29명을 대상으로 돼지편충알을 먹이는 임상실험을 했다. (한두 알도 아니고, 음료에 타서 3주마다 3천 개씩 마시게 했다.) 몇 달 뒤 끝까지 참고 실험을 마친 24명 가운데 21명은 완치됐다고 한다. 독일의 제약회사 바이오큐어가 2004년 이 약을 상품화했다. 

이 연구의 선구자인 조엘 교수는 서구에서 염증성 장질환이 급증하고 있는 것과 인간의 장에 서식하는 대표적인 기생충인 회충과 편충이 급격히 사라진 시기가 일치한다고 지적한다. 인간의 면역체계가 수백만 년 동안 기생충에 익숙해져 있었는데, 현대에 와서 기생충을 필요 이상으로 급속히 박멸함으로써 면역체계에 이상이 생겼다는 것이다. 기생충이 아직도 흔한 개발도상국에서는 염증성 장질환이 희귀한 병이라고 한다. 기생충과 싸울 면역체계가 할 일이 없어지니 과민반응을 보여 오히려 몸을 상하게 한다는 것이다. 크론병이나 아토피, 알레르기 같은 원인불명의 병이 기생충이 득실거리는 후진국이 아니라 선진국에서 주로 나타나는 것도 비슷한 이유에서라고 말한다. 위생이 지나쳐도 문제가 된다.

기생충이 아무 하는 일 없는 존재가 아니라는 증거는 또 있다. 장 속에 촌충을 키워서 영양분을 빨아먹게 하는 ‘촌충 다이어트'가 한때 유행한 적이 있었다. 1950년대 초 ‘오페라의 여왕' 마리아 칼라스가 체중을 30킬로그램 이상 줄인 것도 촌충 다이어트 덕이었다는 설이 있다. 엽기적인 다이어트 같지만, 촌충과 인간의 상생 관계의 모범인 셈이다. 알고 보면 모든 인간은 수많은 세균들과 상생 관계를 맺고 산다. 항생제를 많이 복용하면 소화를 도와주는 장내 세균들까지 죽어버려 심한 설사병을 앓게 된다. 수많은 세균들 덕분에 소화를 시키면서 살고 있으면서 세균보다 몸집이 좀 큰 기생충과 공생하는 것이 사실 창피할 일도 아니지 않은가. 

건강과민증, 지나친 위생관념이 오히려 건강을 해치는 결과를 낳는 것은 생명의 아이러니한 법칙이다. 지나침은 모자람만 못한 법이다. 완벽한 건강은 적당한 질병과 함께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몸속에 기생충도 좀 살고, 집에는 진드기도 좀 살아야 인간도 건강하게 살 수 있다는 사실은 우리를 오히려 안심시킨다. 기생충은 숙주를 죽음에 이르게 할 만큼 어리석지 않다. 인간들이 지구별에 기생하면서 지구를 죽음에 이르게 한다면 회충만도 못한 존재인 셈이다. ‘기생충 같은’이란 표현은 ‘개 같은’이란 표현 못지않게 인간 중심의 잘못된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기생충에 대한 통념처럼 일개미에 대한 통념도 우리를 진실에서 멀어지게 한다. 일본 홋카이도대학 농학연구과 연구진이 5개월 동안 일개미 집단을 집중관찰한 결과 열심히 일하는 개미가 20%, 보통으로 일하는 개미가 60%, 빈둥거리는 개미가 20%였다고 한다. 근면한 일개미들만으로 집단을 구성해도 그중 20%는 또 게으름을 피운다고 한다. 게으름뱅이 일개미는 다른 개미들이 일하는 동안 몸단장을 하거나 어슬렁거리면서 지낸다는데, 인간의 조직에서도 비슷한 현상이 나타나기 때문에 이를 ‘일개미 법칙’이라 부른다. 

일본전산의 나가모리 사장은 사원들 유형을, 스스로 타오르는 ‘자연발화형’, 주위가 타오르면 불이 붙는 ‘착화형’, 불을 붙여도 타지 않는 ‘불연소형’으로 나누면서, 일본전산 내에 그 비율이 1:7:2 정도라고 했다. 아마도 사장의 관점에서 좀 인색하게 봐서 그렇지, 객관적인 시각에서 본다면 2:6:2 비율일 가능성이 높다. 여하튼 일개미들이 모인 일본전산 같은 기업에도 게으름뱅이 개미들이 존재하는 셈이다. 게으름 피우는 개미들이 하는 일 없이 밥만 축내는 기생충 같지만, 집단의 존속을 위해 기여하는 역할이 분명히 있을 것이다. 어쩌면 인간 개개인이나 조직도 자석처럼 양극성이 함께 존재해야 온전할 수 있는 건지도 모른다. 

일본에서는 산업화 시대가 저물면서 청년 백수가 늘어나고, 결혼해서까지 부모에게 얹혀 사는 이들이 늘면서 기생충(parasite)을 뜻하는 ‘패러사이트족’이라는 신조어도 생겨났다. 따지고 보면 이 세대는 일개미였던 기성세대가 만들어낸 세대다. 저 용어에는 근면성실을 무엇보다 중요한 삶의 가치로 여기는 세대, 자립을 못하면 사람 축에 끼워주지 않는 세대의 오만이 담겨 있다. 어쩌면 저 세대는 일중독 사회가 균형을 잡을 수 있도록 균형추 역할을 하는 건지도 모른다. 다른 가치에 알레르기 반응을 보이는 과민성 사회의 면역력을 높이는 역할도 하고 있을 것이다. 그도 아니면 비만 환자 같은 사회의 체중을 조절하는 촌충일 수도 있다. 모든 존재는 그 나름의 역할을 하면서 이 세상에 존재한다. 결국 우리 모두는 공생하며 살아가는 존재들인 셈이다.

http://www.mindle.org/xe/23320?ckattempt=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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