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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이 자기의 과거를 복원하며 세차게 흘러 그 앞을 가로막는 건물과 토지 등을 휩쓸고 지나가는 것이다.

최근 몇 년 사이 수해를 많이 입은 강원도에 살다보니 ‘물’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하게 된다. 그 중 가장 오랫동안 사유하며 놀라워 한 것은 물이 자기 기억을 갖고 흘러간다는 점이다.
폭우가 휩쓸고 지나간 자리를 보면, 그 자리는 어김없이 예전에 물길이 나 있었던 곳이다. 물이 자기의 과거를 복원하며 세차게 흘러 그 앞을 가로막는 건물과 토지 등을 휩쓸고 지나가는 것이다.
따라서 과거를 기억하고 있는 물길 위에 지어진 집과 다리와 밭 등은 늘 불안한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는 셈이다. 자연 앞에 한없이 나약한 존재인 사람도 예외가 아니다.
아직도 완전하게 복구되지 않은 강원도 동해안의 수해 피해지역을 둘러보면 ‘물의 기억’이 지닌 엄청난 힘과 파괴력을 새삼 느껴볼 수 있다. 물론 그 원인에는 순간의 안락과 안위를 위해 수천 년 동안 이어져온 자연의 질서를 훼손한 인간의 턱없는 욕심이 자리하고 있다.
점심공양이 끝나면 특별한 일이 없는 한 계조암으로 산행을 간다. 산행을 하다보면 공연히 예민해지던 심사도 가라앉고, 내 몸이 설악산과 한 몸이 되면서, 잊기 쉬운 운수납자(雲水衲子)로서의 본분이 확연해진다.
산행을 끝내고 돌아와 사중의 일을 보면, 공연히 신경을 예민하게 만들던 일들도 물이 흐르듯 제 자리를 찾아간다. 무릇 도인은 산과 물을 보며 살아가야한다는 옛 어른들의 말씀이 새삼 가슴에 와 닿는 때이다.
계곡의 물길을 따라 걷다보면, 물의 기억을 존중하지 않으면 그만큼 업의 그림자가 길어지겠다는 깨달음을 얻게 된다. 업이란 인간에게 주어진 본연의 질서를 거스를 때 생겨나는 것이다.
흐르는 물 한가운데 턱없이 큰 바위가 놓여 있으면, 떠내려가야 할 나무뿌리들이나 등걸들이 걸려서 큰 화를 불러오게 된다. 업이란 그런 것이다. 제자리에 놓여야 할 것이 엉뚱한 곳에 놓이면 화가 생겨나고, 업의 그림자가 길어지게 되는 것이다.
살아가면서 우리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곳곳에 많은 바위들을 세워놓는다. 부모와 자식 사이에, 스승과 제자 사이에, 남편과 아내 사이에, 심지어 내 마음 사이사이에도 숱한 바위들이 놓여진다. 바위는 들어내지 않은 채 자꾸만 앞으로 나아가려 하니 업의 그림자는 나날이 길어질 수밖에 없다.
옛 어른들은 물길을 조정하면서 물길을 휘어지게 하거나 어쩔 수 없이 돌려세울 수밖에 없을 때는 가까운 곳에 쉽게 터지는 담을 쌓아놓곤 했다. 작은 숨통을 터서 큰 화를 미리 예방하는 것이다. 막기만 한다고 능사가 아니기 때문이다. 작은 숨통들을 열어놔야 화기가 넘치지 않는다는 것을 미리 내다본 지혜의 소산이다.
제자 아지타가 “번뇌의 흐름은 어느 곳에나 있습니다. 그 흐름을 막는 것은 무엇입니까. 그 흐름을 막고 그치게 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그것을 말씀해 주십시오.”라고 청하자, 부처님께서는 “아지타여, 세상에서 모든 번뇌의 흐름을 막는 것은 조심하는 일이다. 그것이 번뇌의 흐름을 막고 그치게 한다. 그 흐름은 지혜로서 막을 수 있는 것이다.”라고 말씀하셨다.
번뇌의 흐름은 이처럼 지혜와 조심하는 것으로 막고, 행복의 흐름은 장애물을 제거해 잘 흘러갈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장애물을 제거할 때도 성급하거나 분노해서는 안 되고, 더 큰 화를 부르지 않도록 숨통을 터 주어야 한다.
물길은 하루의 일상일 수도 있고, 일 년의 흐름일 수도 있고, 한 사람의 일생일 수도 있다. 또한 도도하게 흐르는 역사의 장강일수도 있다. 그 길이 자기 기억을 따라 흐른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우리는 모두 자기가 지나온 길을 기억하고 있는 이 도도한 물길 앞에 서 있다. 언제 폭우가 쏟아져 자신이 지나온 길을 복원하며 세차게 몰려올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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