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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권력

인간은 숨을 쉬고 살아야 한다. 숨을 쉬지 않으면 단 하루도 살 수가 없고, 죽은 자는 절대로 숨을 쉬지 않는다. 누군가가 농담으로 말하기를, 오래 사는 비결이 숨을 쉬지 않고 쉬어야 한다는 것이다. 잠시 하던 일을 그만 두는 휴식을 취하는 것도 쉬는 것이지만 숨을 쉬는 것은 죽음이므로 계속하는 호흡하는 것이 쉬는 것이 되었다 한다.

인간이 살아가면서 갑자기 건강에 문제가 생기고 그 문제가 감당하기 어려운 경제적 부담을 필요로 하거나 의료적 치료로 인하여 평소의 생활을 할 수 없게 되는 경우를 우리는 '의료재난'이라 한다.

치료비가 너무나 비싸거나 평생 치료를 지속적으로 해야만 하는 경우, 특히 그 치료비가 건강보험 제외대상인 경우 가정은 거의 파탄이 나고야마는 상황에 처하기도 한다.

또한, 후유증으로 인하여 평생 장애인으로 살아가야 하는 것도 의료재난에 해당한다. 장애는 산업재해나 자연재해, 교통재해, 화재, 전쟁 등의 인재, 그리고 질병에 의한 의료재해 등 장애가 되는 모든 문제는 재난이라는 것이고, 이 재난에서 남는 것이 장애이다.

'의료권력'은 인간의 가장 걱정거리이고 가장 귀한 생명줄을 다루는 의료가 권력이 되어 사회를 지배하는 것을 말한다. 

인류 역사를 보아도 원시사회 때부터 의료권력은 존재했다. 주술인이 인간의 생명과 운명을 미끼로 권력을 행사하였으며, 그 권력의 상당 부분은 질병으로부터의 치료라는 의료 권력이었다. 

사실 인간의 행복은 의료가 책임을 지는 것이며, 재난으로부터 두려움을 갖고 있는 인간은 그것을 해결할 가능성이 있는 의료에 권력을 내어줄 수밖에 없다.

과거의 의료는 과학적 사고에 의하여 원인을 밝히고 치료를 하는 것이었다. 건강검진을 받아 혹을 발견하였는데, 암이 될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으나 혹을 남겨 두어서 도움은 되지 않으나 없으면 안심은 할 수 있다면 예방을 위하여 치료하지 않을 수 없다. 

의학은 이제 있을 가능성을 가지고 확률게임을 하면서 권력을 확장해 나가고 있다. 필연적 결과를 도출하는 과학이 아니라 개연성을 가진 추측과 확률로 권력을 확장하고 있는 것이다. 
아직 지식으로 축적되어 밝혀진 것보다 미지의 지식으로 남아서 모르는 것이 더 많음에도 의료는 모든 것을 아는 절대자로서 자기만이 법이 되었다.

의료는 신보다 높다. 니이체가 ‘신은 죽었다’고 말하였는데, 과거에는 ‘신은 니이체가 죽었다’고 했는데 지금은 의료가 ‘니이체이건 신이건 죽었다’고 말한다.
그리고 정신병의 경우 인간이 질병을 발견한 것이 아니라 발명한 것이라고 말한다. 질병의 정의나 판단 기준을 인간이 조작적으로 만들고 그것을 법으로 하여 인간에게 적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장애에 대하여 정의를 하는 것에도 의료적 기준을 적용하고, 등급을 판단하는 데도 전문가가 해야 하며, 장애인의 모든 사용물품까지도 의료적 판단이 없이 사용하면 장애가 악화될 수 있으니 장애인은 의료인의 판단에 의해 움직여져야 한다.
그렇게 잘 하는 의료진이 왜 장애는 해결하지 못하는지는 모르겠으나 후유증을 남긴, 임무를 충실히 하지 못한 의료이지만 지속적으로 평생 권력으로 장애인에게 작용하고 지배하는 것이다.

의료재난은 인간의 약함과 두려움을 담고 있고, 의료권력은 그 두려움을 맡는 대신 지배하는 위치를 차지하여 권력으로 작용한다. 

건강보험이 전적으로 책임을 지는 것도 아니면서 강제적으로 징수할 권력이 되고, 주어지는 서비스가 부족하여 불안한 재난안전 감수성을 자극하여 생명보험이니 사보험이니 하는 권력들이 존재한다. 의사만이 아니라 국가 차원의 보험과 사보험이 그 권력을 나누어 가지려는 것이다.

건강보험은 우리를 위해 일하는 것이지만, 1만 5천명의 공단직원 가구를 먹여 살리는 도구가 되고, 관리 절차상의 경직성 경비를 감수해야 한다. 
의료재난에 실제로 노출되는 사람이 1%라면 50만명이 되는데, 그 위험군의 3%를 책임질 예산이 관리비로 빠지게 된다. 

그렇게 좋은 일들을 한다는 보험회사들이 왜 대기업이 되고 사옥 빌딩은 하늘을 찌를듯 높아만 가는지를 생각하면 가입자는 보험으로 위기를 극복할 수는 있어도 부자가 되지는 못하지만 보험회사는 가입자의 잉여금으로 부자가 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계모임의 계주가 자신은 비용을 대지 않으면서 한 사람의 몫을 수고비로 가지는 것이나, 아파트 주민개발위원장을 맡으면서 수고비로 자신은 한 두 채를 무상으로 챙기는 것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장애가 의료재난의 산물인지라 의료권력으로부터 완전히 벗어날 수는 없을 것이다. 아무리 사회적 제약이나 사회참여의 제한, 일상생활의 불편 등을 장애의 판정 기준으로 한다지만 그 앞에는 수식어로 ‘신체적 정신적 결함으로 인한'이란 말이 붙게 된다.

정치가 없으면 국가통제나 운영이 되지 않아 정치는 필요한 것이고 권력도 필요한 것이다. 그러나 항상 정치가 국민을 행복하게 하는 것은 아니다. 정치에 실망한다고해서 맡겨두었던 주권을 당장에 취소할 수는 없기에 시간적 제한을 두고 맡기는 것이다. 
그러면 의료주권력에 대하여 생각해보자. 맡기지 않은 주권이나 권력이 스스로 권력을 구축하여 오히려 권력으로 인하여 생기는 권력재난은 무엇인지 자각해야 한다는 것이다.

장애인이 된다는 것은 의료권력에 이미 몸과 미래를 모두 맡기면서 위임자로서의 자격을 얻는다. 그런데 이 의료권력이 그 권력의 위임자를 망각하고 스스로 생명력과 자기 발전을 도모하면서 장애인을 지배하고 있다. 
아픔을 쓰다듬어 주는 자가 무서운 얼굴을 한 지배자가 되어 장애를 판정하고 서비스를 결정하는 권력을 행사한다. 전문가가 아니면 안 된다고 절대불가침을 선언한다. 

의료시장화가 문제가 아니라 의료권력화가 문제이며, 우리는 의료 보호 아래 거대한 시설의 수용인이 되고 있다. 
병원을 나서도 사회 전체가 하나의 병원인 것이고, 우리는 의료적 지시에 충실한 환자인 것이다. 

웃음치료 강의를 웃으며 듣지만 우리는 본인도 모르게 치료의 대상인 환자가 되는 것이다.


-장애인 곁을 든든하게 지켜주는 대안언론 에이블뉴스(able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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