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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억 년간 품어온 복수심

몸속에 들어온 영양분과 산소를 용해 에너지를 만들어 내는 ‘공장’인 미토콘드리아. 활성산소는 미토콘드리아가 에너지를 생산하는 도중에 ‘오염물질’처럼 나온다.그래픽=강동영 기자


활성산소는 일반인에게 암 같은 질병을 일으키고 노화를 촉진시키는 ‘독성 물질’로 주로 인식되고 있다. 하지만 10년 전부터 활성산소의 좋은 면이 주목받기 시작했다. 활성산소가 세포의 성장에 필수적이란 점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이화여대 연구팀이 활성산소가 장내 세균의 증식을 막는다는 사실도 밝혀냈다. 두 얼굴을 가진 활성산소를 만나보자.

○ 10억 년간 품어온 복수심

활성산소는 세포 내부의 작은 기관인 미토콘드리아에서 주로 생긴다. 체내에서 쓰이는 보통 산소보다 불안정해서 반응성이 증가된 여러 종류의 산소를 통칭한다. 보통 산소는 안정된 분자상태이고 활성산소는 여기에 전자들이 더 붙은 상태. 미토콘드리아는 몸속에 들어온 영양분과 산소를 이용해 에너지를 만들어내는 ‘공장’이다. 바로 에너지 생산 도중에 ‘오염물질’처럼 활성산소가 나오는 것이다.
이화여대 분자생명과학부 이서구 석좌교수는 “미토콘드리아가 활성산소를 만들어 내는 것은 10억 년 전의 원수를 갚고 있는 셈”이라고 말했다.
미토콘드리아의 정체는 10억 년 전 세포에 침입한 박테리아였다는 게 학계의 중론이다. 고등생물의 유전자는 대부분 세포의 핵 안에 있다. 그런데 핵 바깥에 있는 미토콘드리아 역시 고유의 유전자를 갖고 있다.
침입자 미토콘드리아는 세포를 공격하는 대신 공생관계를 맺게 됐다. 미토콘드리아는 세포 안에 들어가 에너지 공장의 역할을 하며 세포에 봉사한다. 그 대가로 세포는 영양분을 제공하고 자신이 분열할 때 미토콘드리아도 함께 분열하도록 허용한다. 전체적으로 볼 때 미토콘드리아가 세포에 굴복해 갇혀 지내는 것.
이 교수는 “미토콘드리아가 지금은 갇힌 채 에너지를 만들지만 활성산소를 냄으로써 세포에 복수하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세포 내의 단백질과 유전자는 활성산소의 공격을 받으면 다 망가진다. 물론 체내에 이를 보수하는 메커니즘이 있지만 완벽하지 않다. 활성산소는 뇌에서 신경세포를 공격해 파킨슨병 같은 뇌질환을 일으키고 인체 곳곳에서 유전자를 망가뜨려 암을 유발한다.
○ 이화여대 연구팀 장내 살균작용 규명
10년 전부터 활성산소가 세포의 성장과 분화에 긍정적인 역할을 한다는 사실이 드러났고 최근 그 구체적인 메커니즘이 밝혀지고 있다. 이화여대 분자생명과학부 강상원 교수팀은 활성산소가 세포의 증식을 조절하는 과정을 분자 수준에서 규명해 영국의 과학전문지 ‘네이처’ 5월 19일자에 발표했다.
강 교수팀은 ‘퍼록시레독신’이란 항산화 단백질이 활성산소를 잡아먹으면 세포가 증식을 멈춘다는 사실도 알아냈다. 특히 퍼록시레독신이 없는 생쥐에서 혈관세포의 이상 증식 현상을 확인했다. 활성산소가 세포에 계속 성장 신호를 보내기 때문이다. 반면 활성산소가 몸에 아예 없으면 세포는 자라지도 분열하지도 못할 운명에 처한다.
활성산소는 세균 증식을 억제해 염증을 막기도 한다. 이화여대 분자생명과학부 이원재 교수팀은 장내 세균 수가 많아지면 ‘듀옥스’란 효소가 활성산소를 만들어 살균작용을 한다는 사실을 밝혀내 미국의 과학전문지 ‘사이언스’ 4일자에 소개했다.
강 교수는 “활성산소가 적당히 있으면 세포가 성장하는 걸 돕고 너무 많으면 세포를 무참하게 죽인다는 사실이 명백해졌다”고 말했다.
그동안의 연구성과에 이 교수를 중심으로 한 국내 과학자들의 기여가 컸다. 이화여대에만 교수 9명을 비롯한 80여 명이 과학기술부와 보건복지부의 지원을 받아 각각 심혈관 질환과 뇌질환에 관련된 활성산소 연구를 주도하고 있다.

이충환 동아사이언스 기자 cosmo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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